[문화]‘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2007 11/13 뉴스메이커 749호]
‘BODY’ 전시회 여는 사진작가 김용호씨, “인간의 몸은 다양한 의미 지니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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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패션월간지에 게재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씨(29)의 상반신 노출 사진이 최근 무용계를 강타했다.
김씨는 ‘보그’ 한국판 10월호에서 토슈즈를 신고 남자친구인 이정윤씨(30·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의 무릎 위에 걸터앉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반신을 드러냈다. 가슴이 그대로 노출됐다.
하지만 이 사진을 둘러싸고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라는 의견과 ‘도가 지나쳐 발레리나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면서 논쟁이 일었다.
결국 국립발레단은 10월 25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김주원씨에게 ‘감봉 1개월’의 조치를 내렸다.
국립발레단의 이 같은 결정은 징계의 타당성과 관련한 또 다른 논쟁의 불을 지폈다.
“김주원씨 누드사진 논란 뜻밖”
문제의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사진작가 김용호씨다.
김씨는 보그, 에스콰이어, 에비뉴엘 등 패션지 화보 사진을 진행해왔고, 장동건·이영애·강동원·전도연·고(故) 백남준 등 문화예술계 톱스타들의 사진을 찍은 인물이다.
2004년 초 화제가 된 이혜영 누드화보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상업사진 영역에서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김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청담동 ‘브라세리 A.O.C’. 그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건물 6층에 스튜디오가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단정한 헤어스타일, 검정색 뿔테 안경,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 없는 얼굴이 인상적인 그는 모범답안을 내야 하는 학생처럼 인터뷰를 하면서 발언 하나하나에 꽤 조심스러워했다.
김주원씨의 상반신 누드를 둘러싼 파문의 여파인 듯했다.
그는 김주원씨의 상반신 누드사진을 둘러싼 논란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반응했다.
해당 사진은 ‘보그’지의 요청에 따라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시비가 일기 전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근사하다는 거였어요. 외설적이라고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죠. 더구나 김주원씨와 이정윤씨는 연인 사이잖아요.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상반신 누드를 촬영한 거예요. 그런데 단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벗었다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김주원씨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물리적 피해까지 입게 돼 몹시 미안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사회는 한 가지 흐름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어요. 그 사진을 외설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 그런 시각도 다양성 차원에서 인정해야겠지요.”
절묘한 타이밍.
김용호씨는 11월 16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BODY(몸)’의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예나,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이원국, 안무가 김판선, 영화배우 이범수, 연극배우 장두이,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장 등이 등장하는 사진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다.
애초 ‘보그’지에 게재된 사진이 아닌 김주원씨의 또 다른 몸 촬영 사진을 이 전시에 소개할 예정이었으나, 워낙 파장이 컸던 탓에 김주원씨의 사진은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김주원씨 외에도 촬영에 임했던 10여 명이 중도에 출연을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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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전에 선보이게 될 다양한 몸 이미지들. |
“누드라고 다 상업적이지 않다”
“이번 전시에는 유명인만 등장하는 게 아니에요. 무명도 많지요. 어린 소녀도 있고, 트랜스젠더도 있어요. 몸을 주제로 한 이 전시는 몇 년 전부터 준비해온 거예요. 틈틈이 작업했죠. 하지만 김주원씨의 상반신 노출 사진을 둘러싼 시비가 일자 자기 사진을 전시에서 빼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적잖았어요. 벗는다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적잖음을 확인케 한 사건이었으니까요. 강예나씨의 경우는 일반적 시선에 맞는 사진으로 골라 전시하기로 했어요. 물론 그런 사회적 편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분도 계셨지만요.”
그가 ‘몸’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한 것은 몸에 대한 일반의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누드사진은 예쁜 몸만 보여주려 했고, 또 최근의 경향은 포르노화된 몸을 보여주는 데만 집중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그것은 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 중 아주 부분적인 것만 표현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몸에 대한 왜곡이 심하다”고 주장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 자식을 낳는 몸 등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몸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누드라고 해서 모두 상업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또 신체적으로 완전한 몸뿐만 아니라 사고로 다리를 잃었거나 질병으로 유방 적출을 했거나 심장박동기를 끼고 있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섭외에 실패에 다양한 사람들의 몸을 사진에 담고자 한 애초 의도에 충실하지 못한 전시가 될 것 같아요. 갓난아기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까지, 또 외적으로 건강한 신체부터 불편한 몸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몸을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작업은 모두 필름촬영으로 진행했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촬영을 고집한 이유는 아날로그 방식이 지닌 특유의 깊은 맛 때문이라고 한다.
작업에 참가한 대다수 모델은 촬영 과정을 즐거워했다.
특히 무용수나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인 등 몸으로 행위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
그는 “단순히 몸을 찍는 게 아니라 그들의 몸에서 그들조차 몰랐던 새로운 것을 찾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며 “바로 이거다 싶은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댔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몸을 주제로 한 누드사진은 오래전부터 작가들이 선호한 표현 수단이었다.
패션과 누드를 사진 미학의 수단으로 삼은 패션사진의 대가 헬무트 뉴튼, 기괴한 에로티시즘의 거장으로 불리는 아라키 노부요시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주목할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누드 사진은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갈림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점이다.
김주원씨의 사례에서 보듯, ‘몸’을 주제로 한 김용호씨의 전시도 이 지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는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경계는 ‘찍는’ 관점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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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만 켜도 가슴 노출은 물론이고 섹스 장면도 거리낌 없이 나오는 세상이에요.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여성의 허리선만 봐도 흥분했지만 지금은 더한 걸 봐도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사회의 도덕적 잣대는 자로 재듯 정확히 구분할 수도 없고 강제성 또한 없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예술과 외설의 정확한 잣대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만약 김주원씨의 상반신 노출 사진을 중학생이 보며 흥분했다면 그 사진은 외설일 수 있겠죠. 그러나 어른이 똑같은 사진을 보며 순수하게 아름답다는 감흥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 순간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작가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관점과 그 사람이 작업에 임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가령 레이싱모델의 엉덩이를 부각한 사진이라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말하기 위해 찍은 것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단지 그녀의 몸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찍은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는 연예인 누드화보 붐이 불던 수년 전, 이혜영 누드 모바일 화보를 찍은 주인공이다.
누드 모바일 화보는 이용자들이 돈을 내야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철저히 상업적인 전략에서 기획한 것이다.
전략 자체가 몸매 좋은 여성 연예인의 누드를 노출함으로써 남성들의 관음증적 성적 욕망을 부추기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보는 이들의 관점에서나 그의 도덕적 관점에서나 그것은 다분히 ‘외설’이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늘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작품사진과 상업사진 구분 무의미”
“이혜영씨의 누드사진들은 상업적이기는 하지만 여성의 몸을 작품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상업적 아티스트로서, 모든 것이 마케팅화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저로서는 상업적 목적을 배제하며 삶을 꾸릴 순 없다고 생각해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다만 작가가 대상이 된 몸에 대한 미학적 관점이 어떠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차이가 있겠지요. 영화 속 노골적 섹스 장면도 감독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표현되잖아요. 요즘은 상업사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사진에 철학적 메시지가 담기면서 새롭게 팔리는 시대예요. 그 때문에 작품사진과 상업사진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를 가리켜 상업영역에서 성공한 작가라고 해도 싫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한 일이죠.”
그는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 등장하는 대사, 즉 ‘과학의 경이로움은 증명 가능한 해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증명할 수 없는 질문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수많은 기적이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늘 가슴속에 담고 살아간다고 했다.
자신의 삶과 일, 그리고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ing)’이기 때문이란다.
사진작가로서의 ‘몸’에 대한 그의 탐구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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