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정책에서 진짜 서민은 찬밥
‘MB와 친서민’ 분석 (상)
보금자리주택·미소금융·자영업자 대책 수혜자는 건설족·뉴라이트·대형 유통업체
지난 6월25일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에서 떡볶이와 어묵으로 시작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2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4대강 살리기’와 함께 ‘친서민·중도실용’ 핵심 과제를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친서민 정책 후속편으로 ‘교육’이 준비되고 있다.
외고 폐지, 대입 수능시험 개선, 영어 사교육비 절감 등 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민생정책을 서두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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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부유층에 치우친 정책으로 비판받던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편다고 했을 때 국민은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등록금 후불제, 보금자리주택, 미소금융 등 친서민 정책을 속속 내놓았다.
케인스주의자였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에 내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10% 근처에서 맴돌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친서민 행보를 보이면서 일부 조사에선 50%대까지 치솟았다.
이런 와중에서 지난 10·28 재보선은 ‘여당의 친서민론 대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맞붙은 성격이 강했다.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재보선 사흘 전에 “재보선 패배시 서민정책 추동력이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며 국민을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은 ‘이명박표 친서민 정책’에 심판을 가했다.
경쟁과 자율의 MB노믹스에서 친서민 정책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국민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차를 보듯 불안해한다.
두 차례에 걸쳐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핵심적인 친서민 정책이 진정 서민을 위한 것인지 집중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1. 보금자리 주택: 경기부양이 서민정책으로 둔갑?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 브랜드 상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주택정책’을 밝힌 지 10여 일 만인 8월27일 국토해양부는 ‘서민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보금자리주택은 2018년까지 전국에 150만 가구가 세워진다.
이 가운데 수도권에는 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60만 가구를 조기에 지을 예정이다.
이 중 32만 가구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짓는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50~70% 수준이다.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정부는 서울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 경기 고양 원흥과 하남 미사 등 4개 시범지구에 대해 사전예약을 받았다.
앞으로도 매년 두 차례 사전예약 방식으로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보금자리주택의 문제는 서민 정책으로 포장했지만 전혀 서민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서민들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의 아파트 ‘공급’만을 강조한 정책이란 비판이다.
서초 우면지구의 분양가는 시세의 50%선인 3.3㎡당 1150만원이다. 80㎡ 아파트의 분양가는 약 2억7879억원이 된다.
청약 당첨자가 10년 만기 금리 5%에 2억원을 대출받으면,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170만원이 넘는다. 서민들로선 큰 부담이다.
진짜 친서민은 국민임대·장기전세주택
이명박 대통령은 8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7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보금자리주택과 관련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마련해주는 정책일 뿐 아니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서민 경기부양 대책의 의미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순수한 친서민 정책이라기보다 경기부양을 위한 의도가 있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단기간에 그린벨트를 풀어 동시다발로 개발이 이뤄지면 투기 확산 등의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보금자리주택 조기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 7880만㎡가 풀리게 된다. 분당 신도시(1950만㎡)의 4배 규모다.
해당 지역의 땅값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서울 남쪽의 과천이나 동쪽의 구리·남양주·하남, 서쪽의 광명 등 그린벨트 해제 유력 지역에선 이미 땅값이 오르고 있다.
막대한 그린벨트를 풀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보상비가 최대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재원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하고 실속은 땅주인들이 챙긴다.
보상비를 받은 땅주인들이 다시 주변 땅을 사들일 경우 도미노처럼 땅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정부와 부동산 투기자들이 한 몸이 돼 거주민을 쫓아내고 돈 잔치를 벌인 기존의 신도시 개발과 다를 게 없다”고 꼬집었다.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서민들은 벌써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이 주변 지역 전세금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보금자리주택 조기 공급 계획이 발표된 8월27일 이후 두 달 동안 수도권 전세금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수도권 평균 상승률 1.94%에 견줘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가 들어 있는 시·구의 평균 상승률은 2.02∼4.34%로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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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이미 국민임대주택 보급지로 지정된 강남 세곡2지구의 경우, 환경부의 반발로 두 번이나 사업이 좌초된 곳이어서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경기도는 곧바로 반발했다.
대부분 경기도에 위치한 그린벨트를 해제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전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제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 공급 방식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김용희 서울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평균 임대주택 비율이 전체 주택의 20~30%인 반면 우리나라는 4%에 그친다”며 “현재 70만 가구 정도인 임대주택을 약 300만 가구까지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앞으로 공급할 150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은 전량을 국민임대나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부동산 거품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금자리주택 분양가가 높은 원인은 인근 아파트 시세가 높기 때문이다. 결국 강남 집값을 연착륙시키는 게 더 서민들에게 다가서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이벤트식 주택정책보다 근본적인 집값 안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2. 미소금융: 정치판으로 변질될라
미소금융은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금융정책으로 추진하는 무담보 소액대출 사업(마이크로크레디트)이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창업자금을 지원해 자활을 돕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대기업(1조원)과 금융권(3천억원)의 기부금, 휴면예금(7천억원) 등 2조원을 재원으로 마련해 10년 동안 25만 가구를 지원한다.
신용등급이 낮은 빈민층에게 담보 없이 500만~1억원을 대출해준다.
지난 9월30일 설립된 미소금융중앙재단(이사장 김승유)이 각 지역별 사업자를 선정해 대출 업무를 수행한다.
미소금융, 친정부 네트워크 활용 가능성
이명박 대통령은 9월17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제3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현대사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에서 직접 서민금융을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미소금융은 출범하자마자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원 마련과 관련해 재계와 금융권에선 ‘반강제’ ‘준조세’라는 비판이 흘러나온다.
결국 기업의 팔을 비틀어 생색내기용 친서민 정책을 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소금융이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은 담보를 잡고 돈만 내주면 되는 금융기관들과 다르다.
지원 대상자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사업이 잘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이 때문에 사업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미소금융 사업자로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단체들이 줄줄이 선정됐는데, 뉴라이트 계열의 친정부적 성향을 가진 기독교·보수단체였다. 미소재단 사업자로 선정된 민생경제정책연구소(이하 민생연)는 2008년 10월 ‘사단법인 뉴라이트’에서 이름을 바꾼 단체다.
김진홍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두레교회 목사)이 이사장, 오광성 전 씨앤앰 부회장이 소장을 맡고 있다.
또 민생포럼은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출신의 김오연씨와 문융식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대표를 지낸 친정부 성향의 단체다.
2007년 8월 열린 민생포럼 창립대회에 당시 대선 후보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다.
종교적 편향성 논란도 뒤따른다. 민생연과 함께 사업자로 뽑힌 해피월드복지재단, 열매나눔재단 등은 모두 기독교 관련 단체다.
미소금융은 올 12월부터 전국에 200~300개 지부를 설립하고 지점 대표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막대한 자금과 대출 권한을 틀어쥐고 전국적인 친정부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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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10월12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소액금융재단이 지원 대상을 선정한 것을 보니 뉴라이트 계열이 상당수 선정됐다”고 따졌다.
여당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도 “(미소금융은) 금융인이 해야지 정치인이 끼어들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미소재단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정치적 입김이 난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소재단 1인당 평균 연봉 7300만원
미소금융은 헤픈 씀씀이로 서민에게 위화감마저 조성하고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1인당 평균 연봉은 7300만원에 이르렀다.
이는 2분기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소득 3900만원의 두배에 가까운 액수일 뿐 아니라 일반복지재단 직원 연봉에 견줘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재단 이사장인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한 이사들은 이사회 참석 때마다 1인당 40만~50만원씩 수당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문제로 미소금융이 정치권이나 정부의 금고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 SSM: 공치사의 향연
지난 6월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을 찾아간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행보가 YTN의 <돌발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 상인이 “(대형마트가) 저희들을 아주 몰살시키려고 합니다”라며 절박함을 토로하자, 이 대통령은 “법률적으로 정부가 못 들어오게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 헌소를 내면 정부가 패소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재래시장 노점상 할 때는 이렇게 만나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의 무차별 진출과 함께 최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 바로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다.
유통 대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 시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 사이의 틈새시장인 SSM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SSM이 골목까지 무차별적으로 파고드는 형국이다. 2000년 26개였던 SSM은 올해 7월 428개로 16배 정도 늘어났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슈퍼마켓에 이어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신세계까지 가세해 점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시민단체는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해 규제 당국이 허가를 내주는 방식인 ‘허가제’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SSM을 개설하려면 지역 협력 사업계획을 세워 지자체에 등록만 하면 되는 ‘등록제’를 정부 안으로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허가제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협정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상인들 앞에서 “재판을 해도 패소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선진국들 SSM 규제, 정부는 왜 못 볼까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 9월22일 ‘개설 허가제에 대한 법률 검토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대형마트 및 SSM에 대한 허가제나 영업 시간의 규제를 WTO의 서비스 무역협정 위반이나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WTO의 규정은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보다 차별을 받음으로써 최혜국 대우나 내국인 대우 조항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데, SSM 규제는 외국과 국내 기업의 차이가 없이 규제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100㎡ 이상 대규모 점포를 개설할 때 근처 상인과 주민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프랑스는 인구 4만 명 이상 지역에 연면적 100㎡ 이상 규모 매장이 들어설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독일은 연면적 120㎡ 이상 규모의 점포에 대해 도시계획법령과 허가제를 적용해 대형마트 난립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입점 때 소매상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으로 비유되는 SSM 논란의 본질은 대기업의 영역 침해다.
자본력을 앞세운 무리한 시장 진출 자체가 처음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불공정 게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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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의 몰락은 한국 경제에 큰 짐이다.
590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몰리면 우리나라 경제는 늪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올 9월 현재 자영업자 수는 573만여 명이다. 2005년보다 44만여 명 줄었다.
주가와 아파트 가격이 회복되고 있지만 밑바닥 경제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요즘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미디어법, 부자 감세 같은 큰 현안에 대해 입을 잘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국민 저항을 받는 현안은 물밑에서 진행하고, 대신 친서민 정책은 큰 소리로 홍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서민이라기보다 중산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OECD는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서로 배열했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소득수준)의 50~150%를 버는 계층을 중산층으로 정의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기준으로 월 354만원을 버는 계층이다.
정부는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의 무주택자인 경우 ‘서민·근로자 전세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연소득 3천만원 이하를 서민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친서민의 시선을 더 낮춰야”
보금자리주택의 수혜 대상은 3억~4억원 정도의 자산이 있는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다.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하기에는 벅찬 수준이다.
미소금융도 금융채무 불이행자와 개인파산자,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등을 대출 대상에서 빼버렸다.
정부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있다.
여성·장애인·빈곤층 등에 대한 친서민 정책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이런 계층에게 더 피부로 와닿는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용산 참사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은 진정성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성격이 짙다”며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돌아섰던 지지층을 되돌리려는 꼼수라면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을 좀더 낮게 해 보다 힘든 서민을 보듬는 데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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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친서민’의 겨울, 더 추워지는 아이들
'MB와 친서민' 분석 (하)
"복지 예산 증가"라지만 무상급식·무상 장학금·장애수당 등 빈곤층 예산은 대폭 삭감
최근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등 '친서민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사상 최대 복지 예산'을 자랑하며 2010년 예산안을 꺼내놨다. 이러한 '친서민 행보'로 서민의 삶은 얼만큼 더 행복해질까?
1. 안양 A초등학교 결식아동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경기 안양에 사는 김아무개(13)양은 지난 여름방학 때까지만 해도 무료 급식 지원 대상자였다.
그런데 다가오는 겨울방학에는 급식을 먹지 못한다.
< 한겨레21 > 이 김양이 다니는 안양 A초등학교의 결식아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여름방학에 43명이던 무료 급식 신청자 수가 겨울방학엔 12명으로 31명(72%)이나 줄었다.
지난해까지는 5월에 한 차례 무료 급식 지원 대상자를 조사하면 겨울방학까지 무료 급식을 지원했지만, 올해는 11월에 겨울방학용으로 또 한 번 조사를 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보건복지부)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훨씬 까다로워진 급식 지원 아동 조사
5월과 11월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결식아동 수가 대폭 줄어든 걸까? 보건복지부는 왜 추가 조사를 하도록 한 걸까?
우선 조사서 양식이 바뀌었다. 5월의 '급식 지원 아동 조사서 양식'에서는 아동의 이름과 인적사항, 담임 교사와의 상담 내용을 적고 급식 지원 방법을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담임의 상담 결과에 따라 급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원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11월에는 조사 항목이 늘어났다.
기본 정보에 '대상자 유형'을 밝혀야 한다. '보기'에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 가정 △기타가 있다.
'급식 지원 사유'도 선택해야 한다. '보기'에는 △소년소녀가정 △저소득 한부모 가정 △보호자의 학대·방임 △저소득 맞벌이 가정 △보호자 질병이나 장애 등이 적혀 있다.
조사서 마지막에는 '관련 서류 확인 여부'란이 있다.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 가구원 수, 차상위 복지사업 대상 여부 등을 적어야 한다.
무료 급식을 신청하는데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 셈이다.
급식 방법도 축소됐다.
5월에는 단체급식소 급식, 일반음식점 급식, 도시락 배달, 주·부식 지원, 식품권 지원 중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11월에는 단체급식소와 일반음식점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 급식 방법을 두 가지로 한정했기 때문에다.
보건복지부가 "식품권 지원을 최소화하라"고 내린 지침도 작용했다. '식품권 지원'은 기존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급식 지원 방법이다.
이 학교에서 무료 급식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급식 지원 아동 조사표에 항목이 늘어나 신청이 까다로워지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무래도 지원을 하기 부담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가난'을 '증명'하는 이들만 결식아동으로 남았다. 이번 겨울방학에 급식을 신청한 12명 중 6명이 기초생활수급권자다. 나머지 6명도 차상위계층 등 서류상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움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무료 급식 신청자 조사표를 복잡하게 하면 조사 과정에서의 수치심 등으로 신청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이는 공식적으로 결식아동 수를 줄이라는 지침을 내리는 것보다 더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최근 무료 급식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일선 교사들이 자신의 학급에서 결식아동 수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양 A초등학교에서 겨울방학 무료 급식 신청자 수가 줄어든 것은 '결식아동 급식 지원금'의 전액 삭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예산 삭감 맞춰 급식 지원자 줄이기 나섰나
결식아동 급식 지원은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5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됐다.
하지만 지자체의 예산 부족과 결식아동의 증가로 인해 정부가 2009년 예산에 '결식아동 급식 한시적 지원 예산' 421억원을 편성했다.
추경예산까지 합치면 총 541억원이 투입됐다. 그 결과 2009년 초 겨울방학(45만2321명)과 여름방학(54만2321명)에 급식 지원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중앙정부 예산의 도움을 받았다. 지자체를 통해 지원받는 결식아동은 26만여 명이었다.
그런데 2010년 예산안에서는 결식아동 지원금이 폐지됐다. 2009년도 지원금은 지난 여름방학을 지나면서 이미 소진된 상태다.
이대로라면 올 겨울방학 때 무료 급식을 줄 수 있는 아동 수는 여름방학 때의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에 각 지방교육청으로 내려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까지 8248억원 삭감할 예정이다.
결국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이 무료 급식 등 학생 복지에 투입할 예산 자체가 적어지는 셈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아동청소년복지정책과 담당자는 "올해는 경기 악화로 갑자기 결식아동이 늘어 긴급 지원을 한 것이고, 내년에는 지자체별로 결식아동 수를 전수조사 해서 그에 맞게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부산·대구·강원·경북 등 광역자치단체는 내년 급식 예산을 줄일 예정이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0년도 광역자치단체별 예산 요구 현황'에 따르면, 내년에 서울 39%, 대구 16%, 경북 4% 정도씩 급식 예산이 삭감될 전망이다.
곽정숙 의원은 "국비가 편성되지 못해 아이들이 당장 방학 중에 굶게 생겼는데, 각 지자체가 예산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예산을 줄일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밥 굶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외면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 고3 기초생활수급권자 조군
오후 5시, 교복을 벗고 작업복을 입는다. 밤 12시까지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짐을 나르고 나면 작업복이 축축해진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 1시. 몇 시간 눈을 붙이고 학교에 간다. 지난 10월 말부터 일요일만 빼고 반복이다.
일요일에는 갈빗집에서 일한다. 숯불을 채우고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운다.
경기 시흥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조성현(18·가명)군의 일상이다. 수능 시험을 본 날에도 일을 했다.
입학금 마련하려 수능 날에도 물류센터 알바
대학 입학금 마련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조군은 지난 10월 수시 1차로 수도권의 한 사립대에 합격했다.
독거노인·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것이 인정돼 '글로벌 인재 전형'에 합격했다.
갈빗집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해 월 130만원을 버는 어머니는 문자메시지로 "아들,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생활비, 대출이자, 고1 여동생 학비 등으로 한숨이 잦은 어머니에게 등록금을 달라고 할 순 없다.
알코올중독에 직업이 없는 아버지에겐 더더욱 기댈 수 없다. 합격 소식을 들은 뒤부터 조군은 노동에 나섰다.
당장 마련해야 하는 돈은 '입학 예치금' 50만원이다. 12월 중순까지 내야 한다.
다행히 물류센터의 월급날이 12월5일이다. 그동안 일한 대가가 110만원이라니, 그 돈으로 예치금을 낼 수 있다.
문제는 400만원이 넘는 입학금이다. 그가 합격한 대학은 지난해 입학금을 14% 인상했다.
치솟는 등록금 앞에 월급봉투는 초라하다. 그나마 물류센터 일도 2월이면 끝난다.
현재로선 입학금을 구할 길은 학자금 대출뿐이다.
조군은 우선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아르바이트를 해서 일부라도 갚아나갈 생각이다. 조군은 "자꾸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했다.
대학생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장학금 받는 일"이다. 빚이 쌓이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대학에 '근로장학제도'가 있다고 하니 신청할 계획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하루빨리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활비를 자신이 대고 싶다.
조군의 꿈은 이뤄질까?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2009학년도 신입생에 비해 2010학년도 신입생이 불리하다.
우선 '무상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
2009년까지는 기초생활수급권자 대학생이 1년에 450만원의 '미래로 장학금'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 장학금으로 메우지 못한 등록금은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상환 기간을 잘 조정하면 졸업 뒤 원금만 갚아나가면 됐다.
또한 생활비로 1년에 2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10년 신입생부터는 기초생활수급권자라 하더라도 무상 장학금이 없어진다. 대신 1년에 200만원의 생활비가 무상 보조된다.
결국 기초생활수급권자 대학생이 국가로부터 받는 무상보조가 4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줄어든 셈이다.
나머지 학자금은 이자를 내고 대출받아야 한다. 소득 1~7분위(연소득 약 4839만원 이하)에 똑같이 5.8% 정도의 금리가 적용된다.
새로 도입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등록금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하라며 정부가 내놓은 카드다.
지난 11월2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취업 후에 학자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서 재학 중에는 등록금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1월19일 교과부가 발표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시행방안을 보면, 등록금 걱정을 덜어준다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 제도의 허점은 '이자'와 '상환 시점'에 있다. 현행 학자금 대출제도에서는 소득 분위별로 일정 비율만큼 이자를 보전해줬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는 무이자였다. 그런데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에는 그런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대출자가 같은 비율의 이자를 내야 한다. 교과부는 내년 1학기 대출이자를 5.8%로 예상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취업 후 상환제도 분석 시물레이션'을 통해 "사립대학 평균 등록금을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대학 4년간 등록금 전액을 대출받는다고 했을 때 2009학년도 신입생에 비해 2010년도 신입생이 2792만원을 더 빚지게 된다"고 밝혔다.
무이자 혜택과 무상 장학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상 장학금·이자 지원 예산 4천억 삭감
결국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 빚을 쌓아나가게 됐다. 졸업 뒤는 물론 재학 중에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조군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그는 다른 장학금을 알아보거나 일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부에만 전념할 순 없다.
반면 정부는 무상 장학금 예산 2223억원과 이자 지원 예산 2029억원(이상 2009년 기준)을 절감하게 됐다.
치솟는 등록금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다.
지난 9월8일 발표된 '200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서 한국은 '등록금이 비싼 나라' 2위로 꼽혔다.
연평균 등록금이 국공립 4717달러, 사립 8519달러로, 미국(국공립 5666달러, 사립 2만517달러) 다음이다.
권영길 의원은 "정부는 등록금 문제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등록금 대출 방안만 내 놓았다"며 "등록금 상한제 없는 취업 후 상환제는 결국 정부가 대학 교육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대출은행 노릇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안민석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19명은 등록금 상한제 등의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또한 권영길 의원 등은 사립대학이 수천억원씩 적립금을 쌓아놓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하지만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 계류 중이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3. 중소기업 청년인턴 김씨
지난 10월, 김대현(28·가명)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는 서울의 한 리서치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다기에 지원해 최종면접을 치르게 됐다. 그런데 면접장에 가서야 "이번에 뽑는 것은 청년인턴"이란 얘기를 들었다.
회사 쪽은 "우선 청년인턴으로 3개월을 일하면 그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했다. 취업이 급한 김씨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김씨가 청년인턴으로 일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한 그는 80군데 정도 이력서를 냈다.
직원 수 20명 규모의 컨설팅 회사에서 "청년인턴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 거절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회사 쪽은 "우리 회사는 사람 자르고 이런 것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지원 기간인 6개월이 지나자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지난 9월의 일이다.
회사는 "티오(TO·일자리)가 없다"고 변명했지만 김씨가 나가자 곧 새로운 청년인턴을 고용했다.
이 컨설팅 회사는 올해 3~11월에 단 한 명의 신입사원도 채용하지 않았다. 올해 입사한 5명 모두 청년인턴으로 채웠다.
청년인턴제, 단기성 비정규직만 양산
이후 20여 개의 이력서를 더 넣은 끝에 지난10월, 직원 수 30명 규모의 리서치 회사에 입사했다.
이곳에서도 그를 청년인턴으로 고용했다. 정규직 보장 약속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기에 믿기 힘들다.
그는 "청년인턴제 시행 이후 중소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는 대신 청년인턴을 고용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 듯하다"며 "이번 인턴 기간이 끝나면 또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우리 처지를 당연시하는 듯해 씁쓸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11월16일 현재 1만5500개 중소기업이 3만1500명의 청년인턴을 고용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부터 9개월간의 고용 수치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를 위탁 운영하는 구인업체 관계자는 "기업의 처지에서는 신입사원 뽑을 것을 청년인턴으로 대신하면 임금의 50%가 정부 지원금으로 나오니 훨씬 이득"이라며 "이 때문에 중소기업들의 청년인턴제 참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청년인턴을 고용할 경우 6개월간 임금의 50%를 지원한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만 운영할 계획이던 청년인턴제와 희망근로사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희망근로 10만 명, 청년인턴 5만 명, 사회서비스 14만 명 등 모두 65만 개 일자리를 새로 창출해 내년 상반기까지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직접 일자리 창출 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8천억원 증가한 3조5천억원으로 확대하고, 내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희망근로, 청년인턴 등을 통한 단기성 일자리 창출은 비정규직만 양산한다는 지적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중은 34.9%다.
1년 전 33.8%보다 1.1% 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1년 전보다 5.7%(30만9천 명) 늘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수치는 근로계약 기간을 별도로 정하는 기간제 노동자의 증가다.
45만 명이 늘었다. 이들은 주로 근속연수 1년 미만으로, 특히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행정'(34만7천 명) 분야에서 많이 늘었다.
희망근로와 청년인턴 등 정부가 만든 일자리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공공부문에서 저임금·비정규직·단순노무직 일자리를 늘리는데 급급했음을 말해준다"고 진단했다.
정작 정부는 2010년 예산안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추경에서는 1100억원 배정한 바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 추진단 운영' 예산 3억원도 전액 삭감했다.
'비정규직 건설근로자 취업능력 향상 프로그램' 예산도 100억원 전액 삭감돼 프로그램이 제 구실을 못할 전망이다.
'취약근로자 권리 구제 강화' 예산도 12억원 삭감됐다.
4. 중증장애인 최원준씨
최원준(32·뇌병변 장애 1급)씨는 매달 장애수당 12만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경기 분당 집에서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노들장애인야학을 오고가는 교통비와 전동휠체어 수리비, 병원비 등을 쓴다.
최씨의 가족은 버스 운전을 하는 아버지가 벌어온 150만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한다.
아버지가 육십 평생 돈을 모아 산 20평대 아파트가 최씨 가족의 전 재산이다. 최씨는 가족에게서 용돈을 받지 못한다.
요즘 최씨는 내년부터 도입된다는 '중증장애인 연금제도' 때문에 고민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장애수당은 없어진다.
부모 소득 따져 지원 끊는 연금제 도입
현행 장애수당 제도에서 최씨는 '차상위계층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최씨는 소득이 따로 없지만 부모가 월 150만~200만원의 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원받지 못한다.
대신 장애인 본인의 소득만을 기준으로 하는 장애수당 제도 덕분에 차상위계층 중증장애인에 해당돼 상대적으로 높은 장애수당을 받아왔다.
그런데 새로 도입되는 연금제도에는 '1촌 직계 혈족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한 기준 이상인 자는 제외된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따르면 최씨는 부모의 소득과 가족이 소유한 아파트 때문에 연금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최씨는 억울하다. "부모님이 언제까지 나와 같이 살 수는 없잖아요. 나이가 있는데 부모님이 있다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으니 안 좋아요."
최씨가 더듬거리면서도 힘을 주어 말했다. "연금 깎이면 안 돼요.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중증장애인에게 절실한 활동보조 서비스 예산도 소폭 상승에 그쳐 내년엔 신규 신청자를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2010년 활동보조 서비스 예산은 1348억원이다. 2009년 추경예산을 포함해 총 1131억원이었던 것에 견줘 217억원 증액된 액수다.
이 예산 규모로는 2009년 2만5천 명이던 지원 대상을 3만 명까지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3만5천 명까지 지원할 수 있는 예산 2458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활동보조 서비스는 신청자가 많아 이미 지난 7월에만 서비스 이용자가 2만7천 명을 초과한 상태였다"며 "결국 지난 10월28일 보건복지부가 각 지자체에 '신규 진입을 금지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도 3만 명에 육박하는 이용자와 수천 명의 대기자가 있는데 3만 명만을 위한 예산을 배정한 것은 2010년에 신규 신청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도 "이 예산만으로 내년 서비스 운영이 쉽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예산이 조금 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관련 예산 중 삭감된 것도 눈에 뛴다.
△ 장애인생활시설 기능보강 36.4% 삭감
△ 장애인의료재활시설 기능보강 18.3% 삭감
△ 장애인 자녀학비 11.2% 삭감
△ 장애인차량 LPG지원 93% 삭감 등이다.
2009년 본예산과 비교 '복지 예산 착시 효과'
2010년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총 81조원이다.
지난 11월2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도 복지 예산은 총지출 증가율 2.5%보다 3배 이상 높은 8.6%가 늘었다"며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복지 지출 비중은 27.8%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증가율'과 '비중'이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8.6%라는 증가율은 2009년 본예산과 비교해 나온 수치다.
통상 예산을 비교·분석할 때는 올해 추경을 포함한 예산과 내년도 예산안을 비교하는 점에 비춰보면,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한 관계자는 "다만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추경예산이 대규모로 편성되다 보니 정부가 본예산끼리 비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기획재정부는 의도적으로 본예산 기준으로 수치를 작성해 발표한다"며 "이는 복지·민생·교육 등 주요 지출이 추경예산안을 포함한 올해 지출보다 삭감됐거나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고3 기초생활수급권자 조군은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난방을 하지 않고 잔다.
방학 중 무료 급식 도시락이 오면 점심에 아껴서 반을 먹고 저녁에 나머지를 먹는다. 많은 결식아동들이 그렇게 방학을 난다.
컴퓨터를 갖고 싶지만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대신 일요일에 갈빗집에서 일해 받는 일당 4만원 중 2만원을 떼서 어머니께 드린다. 조군도, 안양 A초등학교 결식아동들도, 청년인턴들도 겨울을 나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친서민'의 화려한 포장이 아닌, 속이 꽉 찬 '의지'다.
근로장학생은 근로자인가? / 부처 간 이견… 가난한 대학생만 진퇴양난
정부가 저소득층 대학생을 위해 내놓은 정책 가운데 하나가 "근로장학금 등 혜택을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대학생 근로장학금 확대 및 융자제도 혁신'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로장학제도 역시 표류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권자 대학생들은 매달 받는 근로장학금을 가계소득에 합산한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방침 때문에 자칫하면 수급권을 잃을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 한겨레21 > 785호 줌인 '가난한 대학생 놀리는 근로장학금' 참조 ).
근로장학금이 근로소득인지 여부에 관해선 여전히 부처 간에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 한겨레21 > 보도 이후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기획재정부에
△근로장학금이 근로소득인지 여부 △근로장학금을 월별 대신 학기별로 지급하면 근로소득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지 등을 묻자, 기획재정부는 "근로장학금은 대학생이 학교 내외의 장소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이므로 근로소득에 해당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근로장학금을 월별 지급에서 학기별 지급으로 변경해도 근로소득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는 '근로장학생은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단해왔다.
2006년 10월 한남대와 충남대 학생들이 "근로장학금에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질의하자, 대구지방노동청 안동지청의 근로감독관은 "근로장학금이 단순히 근로에 대한 대가의 성격이 아니라 명목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이어서, 이들 근로장학생을 대학교의 지휘·감독하에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노동부 근로기준국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부 근로기준국 임금복지과 전해선 사무관은 "근로장학생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장학금을 주는 건데 그게 왜 근로자인가.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타파할 해결책으로 기획재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규칙 변경을 제안했다.
기초생활수급권 기준을 정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규칙은 '소득인정액' 산정 때 제외할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이 목록에 근로장학금을 넣으면 된다는 간단한 논리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해결 방안의 열쇠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쥐고 있다. 남은 것은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릴 '의지'다.
/ 한겨레21 | 입력 2009.11.27 | 글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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