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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김호기의 대화](1) 이명박 정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테마파크 2011. 2. 25. 01:46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 이명박 정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이상돈 “정부 개입은 소외층 위한 것… 지금은 그 반대”
- 김호기 “시장만능·개발주의 결과는 반서민적인 양극화”

 

 

 ▲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운데)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오른쪽)가 지난 22일 서울 충정로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러 온 주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이상돈 교수(중앙대·법학)와 김호기 교수(연세대·사회학)가 경향신문 지상을 통해 '대화'를 시작한다.

이 교수는 '합리적 보수', 김 교수는 '유연한 진보'의 길을 각각 걸어온 지식인으로 꼽힌다.

 

'대화'는 안보에서 복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보수와 진보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공유하며 그 '다름' 속에서도 '같음'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두 교수는 매주 이슈의 중심인물을 만나거나, 현장을 찾아 보수와 진보라는 저마다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분열·반목으로 치닫는 소통의 부재를 극복하고, 상생의 담론을 만들어갈 것이다.

 

첫 번째 '대화'는 집권 4년을 맞이하는 이명박 정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다.

대화는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충정로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시작됐다.

화두는 물가였다. 막 점심시간이 지난 마트는 한산했다. 카트에 사과 3개를 담은 주부가 유제품 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다.

"요새 장보기 어떠신가요?" 김호기 교수가 묻자 오경란씨(40)는 "다 올랐다"고 단정했다. 오씨는 "사과 한 개만 해도 얼만지 모르겠고, 쌀 빼고는 모두 오른 것 같다. 예전에는 가계부에서 교육비·문화생활비 비중이 컸는데 요새는 식비가 30% 정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청과물 코너에선 "하루하루가 달라서 장보기 겁난다"는 50대 주부의 넋두리가 터졌다. 김 교수와 이 교수는 정육코너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 직원은 "구제역 여파로 판매량이 뚝 줄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지만 그와 같이 국민소득도 올라야 하는데 중산층과 서민층은 이를 체감할 수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경향신문사로 장소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김호기 교수 = 첫 대화는 이명박 정부를 돌아보는 게 어떨지. 작년에는 천안함 사건, 지방선거, 연평도 포격 등이 있었다. 4대강 사업 공사도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열렸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상돈 교수 =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된 한 해였다. 4대강 사업은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반대가 거세게 일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정권이었는데, 지난해부터는 잠복됐던 경제 문제가 드러나는 것 같다. 물가와 전세난이 그렇고 특히 소득불균형이 심해졌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저금리, 고환율 기조가 흔들리는 시점에 와 있다.

김호기 = 비슷한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로 이름붙일 수 있다. 감세정책과 규제완화가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면, 개발주의적 측면에서는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하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상돈 = 좋게 말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정책이다. 이명박 정부가 과연 그렇게 하고 있나 하면, 그렇게 볼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규모 토목사업, 그것도 사업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을 국가예산으로 하는 것은 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거리가 멀다. 관치금융도 하고 있고, 외국에서는 환율조작 혐의가 있다고도 하지 않는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고 구태의연한 관치경제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은 소외계층 돌보기나 사회안전망 구축에 있는데, 지금은 그 반대편에 있다고 본다.

김호기 = 이명박 정부에서는 시장주의와 국가주의가 편의적으로 운용되면서 시장만능주의 경향과 개발지상주의 경향이 강화됐다. 주목할 만한 정책 기조 중 하나가 2009년에 내건 친서민·중도실용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반서민적인 사회양극화 심화였다. 수출 대기업은 호황을 누려 아랫목은 따뜻한데 서민들의 윗목까지 온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상돈 = 반서민 정책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정부는 없다. 그래서 친서민을 내세우지만 현 정부가 수출 위주 대기업을 통해서, 또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서민층에 혜택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친서민·중도실용이 껍데기만 남았다. 얼마 전 문제가 된 홍익대 청소노동자를 보면서도 월급 100만원이 안되는데, 대학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충격적이고 부끄럽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어두운 그늘이다. 대북정책을 이야기해보면, '비핵·개방·3000'은 사실 실현시킬 수 없는 이야기였다. 국내적인 요소 때문에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보수층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집권 초에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정책을 선택할 여지를 잃어 버렸다. 남북관계는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졌다.

 

김호기 =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의 문제는 국내용이었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불만을 품었던 보수세력을 고려한 정치적 의미가 컸다. 국가적 차원에서 포용정책의 긍정적 부분을 계승하면서 포용과 강압을 생산적으로 결합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요구됐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마추어리즘이 두드러지면서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지난해 분수령을 이룬 것은 6·2 지방선거였다.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에 대한 거부 심리가 선거 결과에 담겨 있었다. 안보 무능, 전쟁 위험 등 야권이 제시한 평화 패러다임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졌다. 지방선거의 또 다른 함의는 친서민·중도실용의 좌절이었다. 이를 대신해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론이 나왔지만 많은 논란을 불렀다.

이상돈= 현 정부의 친서민·중도실용, 공정사회 개념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는 취임 2년 동안 정부에 대한 불신이 반영됐다고 본다. 젊은층엔 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돌이켜보면 이 정권 수뇌부의 병역 미필·면제 문제가 화두가 됐고, 종교계에서 일으킨 4대강 반대운동이 지방선거에 복합적으로 반영됐다.

김호기 = 공정사회론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그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적잖은 국민들이 이 정부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강부자·고소영 내각, 부자감세, 서민 부재 등이다. 정부는 새로운 가치로 공정을 제시했지만 정작 국민 다수는 이명박 정부야말로 일련의 인사파동에서 보듯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이상돈 = 공정사회론을 내걸기 전에 정권을 이끄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이고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추구해야 할 큰 가치이지, 정권이 정략적으로 내걸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호기 = 지난 1년 동안 주목할 현상이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문제가 이를 촉발시켰다. 복지담론의 부상은 그만큼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거한다. 전세대란이나 고물가에 대한 서민친화적 정책이 아쉽다. 이 와중에 구제역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가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했고, 뒤늦게 서둘다보니 침출수 문제 등 환경재앙이 우려된다. 녹색성장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상돈 = 복지 확충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복지가 과연 궁극적 해결책이 되느냐가 문제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다. 일자리 확충이 가장 확실한 복지다. 구제역 발생 자체를 정권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구제역이 크게 문제될 것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다. 전반적으로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지인에게도 접근이 개방돼 있는 우리나라 축산의 관행과 취약점 때문에 큰 재앙을 초래했다. 현실과 사실을 호도하려고도 했는데, 현 정권이 솔직하지 않다는 사실이 또다시 드러났다.

김호기 = 앞으로 1년을 전망해보자.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내년 선거를 고려할 때 정부가 실질적으로 일할 기간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그동안 추진해 온 일들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둘째, 촛불집회 이후 국민들이 정부에 원하는 것은 소통이었다. 대통령이 재래시장에 가서 서민들과 부분적으로 소통하거나 일방적인 연설을 할 게 아니라 전체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진정한 쌍방향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이상돈 = 개헌은 논의할 가치도 없다. 화급한 것은 무리하게 유지해왔던 경제정책이 한계점을 보이고 있어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올 1년은 경제정책에서 경착륙을 예방하고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저금리·고환율 속에서 발생하는 물가상승,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전세난을 시장에만 맡겨둘 것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 현 정부는 정치에는 마음을 비우고 경제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

김호기 = 앞으로도 대화가 이어질 텐데, 어떤 사회나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서 바람직한 경쟁은 '생산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존의 가능성,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길 바란다.

이상돈 =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 피부에 와닿는 문제에 접근했으면 좋겠다. 똑같은 사안을 보더라도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 정리 | 임지선 기자 | 입력 2011.02.24 21:45 |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