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MB의 정신분석
최근 2MB(이명박)의 하는 짓거리를 보며 많은 분들이 "대통령 후보들이 의무적으로 정신감정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심지어 "싸이코패스가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고 있죠. 그런데 사실 2MB가 서울시장이던 시절에 이미 한 정신과 의사가 그의 정신분석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각종 언론 칼럼 기고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그 주인공이죠.
정혜신씨는 이 글에서 2MB과 박찬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박찬욱이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자신을 저평가하는 타입이라면 2MB는 통제불능의 자신감으로 가득찬, 브레이크도 백미러도 없는 불도저 같은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4년전에 쓴 글이라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현재의 시국 상황을 빚은 근본 원인에 대해 너무나도 예리하고 통렬하게 지적하는, '성지순례'급의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의 원문은 [사람 vs 사람](정혜신, 개마고원)의 <이명박 vs 박찬욱> 장에 수록되어 있으며, 2MB 관련 부분만 선별적으로 발췌했습니다. 쥐대가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전략)... 남이 보는 '자기'와 내가 보는 '자기'는 다르다. 그 괴리감이 느껴지는 경계는 선(線)이 아니라 지대(地帶)에 가깝다. 일종의 '중간지대'라고 할까. 중간지대는 내면의 자기와 외면의 자기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의 소용돌이 영역인데, 그 소용돌이 영역에서 심리적으로 어떤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느낌과 태도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low self-esteem(자신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함)' 쪽이지만 그 또한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어떤 이는 지나치게 자신감을 드러내서 공연히 얄미워 보이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위상에 비해 지나치게 몸을 낮춘다.
부적절하다는 측면에서는 50보 100보다. 인간의 일생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을 꿰려는 행위처럼 내면의 자기와 외면의 자기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연속이다.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하고 침침한 눈만 원망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막연히 자신감을 가지는 게 좋다, 나쁘다의 일차원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자신감이란 결국 한 인간이 이 '중간지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한 지표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잣대라는 말이다.
...(중략)... 그런 자신감이라는 측면에서 서울시장 이명박은 박찬욱과 거의 상반되는 지점에 위치에 있는 듯하다.
이명박의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태도는 그의 전매특허에 가깝다. 물론 이 또한 부정적-긍정적 평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이다.
'중간지대'에서 보이는 이명박이란 사람의 심리적 패턴의 하나일 따름이다.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정치방학을 보내고 있던 2000년 10월, 이명박은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온라인 증권중개회사를 설립한다. 그의 첫 목표는 사업 첫 해부터 이익내기였고, 늘 그랬듯이 주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감독 당국에선 '첫해 흑자'를 근거로 한 이명박의 사업 계획서를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에 대해 이명박은 자신은 현대시절에도 그랬지만 3,4년 지나서 흑자를 낸다고 하면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2001년 말이면 누구 말이 맞는지 드러난다"고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사업은 2001년 초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시작으로 좌초되고 말았다. 사이버금융의 기본틀을 확 바꾸어 한국에 없는 첨단 기법의 증권업무를 보여주겠다며 설립한 회사였지만 1년도 안 돼 회사는 망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이명박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4년 시사잡지 표지에 "이명박 시장 미국 LA에서 100억대 소송 낸 사이버금융 미스터리" 같은 헤드라인이 나올 정도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명박에겐 흔치 않은 실패였지만, 그는 그로 인해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이명박식 자신감은 더욱 확고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에게 있어 내면의 자기와 외면의 자기가 갈등을 일으키는 '중간지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싶다.
남이 보는 '자기'도 자신이 보는 '자기'로 환치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자신만만해 보인다.
이명박 자신의 말처럼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되지만 유독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있다. 이미지란 자기의 생활 그 자체"이다. 이명박의 자신감이란 바로 그런 독특한 이미지의 한 결정체다.
'자신감'이라는 삶의 한 태도를 통해서 추측 가능한 서울시장 이명박과 영화감독 박찬욱은 어떤 모습일까?
▶ '컴퓨터를 장착한 고속 불도저'
이명박은 여우다. 매사에 치밀하고 꼼꼼하다. 그리고 놀랄 만큼 민첩하다.
한 국회의원은 서울시 국감장에서 이명박 시장의 '불도저 방식'을 지적하며 "보통 사람은 생각하고 뛰는데 이 시장은 뛰고 나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명박은 뛰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시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추진력, 현대, 불도저, 청계천' 등이다.
그 이미지들을 다시 축약한다면 '불도저'라는 상징어로 표현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명박은 '불도저'라는 단어를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리더십을 '불도저 리더십'으로 부르는데 그것이 개발독재 시대의 밀어붙이기식 리더십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특성이 타인의 눈에 단점으로 비칠 때 나타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명박 특유의 자신감과 결합할 때 불도저의 단점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명박은 정치입문 후 자신이 늘 기존 정치인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견제를 당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 자신의 강한 소신과 자신감이 상대방에게 적대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표현대로 강한 소신과 자신감은 이명박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다. 굳이 이명박에게 불도저라는 닉네임을 붙여야 한다면 '컴퓨터를 장착한 고속 불도저'가 가장 귽접한 표현일 듯싶다.
그는 속도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행정이나 경영에서 무엇보다 스피드를 우선한다.
서울시장 취임 후 청계천 복원공사의 착공까지 4년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는 직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업은 1년 만에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실제로 그는 시장 취임 후 1년 만에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시장이 워낙 빠르게 나가 따라잡기에 애를 먹고 있다는 서울시 직원들의 반응에 대해 이명박은 "저는 지금 속도를 반쯤 내고 있습니다. 완전 속도는 아니고, 기업 경영하는 속도의 반을 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강북을 개발하겠다는 시장이 강남에 살고 있으면 어쩌느냐는 한 지지자 할머니의 말을 듣고 사흘 만에 강북에 있는 시장 공관으로 이사할 만큼 이명박은 결정과 행동이 빠르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이명박 시장 취임 1주년엔 청계천 복원사업과 강북 뉴타운 개발 착수, 2주년엔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 3주년엔 청계천 복원 완성, 4주년엔 용산시민공원이 착공된다. 당연히 그의 속도경영에 대한 시시비비가 없을 리 없다.
'이명박 서울시장 체제가 들어선 후 사방에서 망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지적에서부터 이 시장이 게임을 하듯 시정을 운영한다는 질타, 서울시 행정이 '내실보다는 외형'을 '민주적 합의보다는 독선적 밀어붙이기'를 양날개로 하는 이미지 행정의 구현이라는 비판도 터져 나온다.
요지는 '무리한 개발지상주의'에 집착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대한 이명박 시장의 항변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이명박의 독선적인 행동'이라고 무시할 것만은 아니다.
우는 애도 속이 있어 운다는데 이명박처럼 여우 같은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명박은 "치밀하게 계획 세우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결정된 것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보고 너무 빨리한다고 걱정한다"며 자신은 깊이 생각해서 계획을 세우고, 결정이 나면 빠르게 추진하는 스타일이라며 그것이 CEO가 일하는 방식이라고 역설한다.
서울시장 취임 이전에 과장 수준의 업무는 파악해둔 덕분에 이른 시일 내에 본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개인적 노력도 빼놓지 않는다.
1980년 현대건설 사장 시절, 갑작스럽게 검은 승용차에 실려 모처에 끌려가는 긴장된 상황에서도 자신을 인수인계하는 모처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부터 할 정도로 기업경영 마인드가 몸에 배인 사람이니 경청할 부분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가 자신의 의사결정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이렇다.
"저는 막연하게 그림을 그려 발표하는 정치인 시장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것은 부끄러워서 못합니다. 완벽하게 검토하고 준비해서 시행 단계에서 발표하는 CEO 시장입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저에게 신뢰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각종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늘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이명박의 비밀을 알 만하다. 그렇다고 매사에 얄미울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늠름한 그의 태도가 경영의 효율성 측면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식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 '과도한' 자신감의 부작용
이명박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인간 의지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인간의 의지력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개인적으로는 탐탁치 않지만,이명박의 성실과 강철 같은 의지는 실로 놀랍다.
그의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을 넘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타고난 체질이 아니라 반복된 노력의 결과란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한밤중에 해외지사로부터 걸려오는 국제전화를 받을 때도 낮에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것처럼 하기 위해 늘 긴장하는 연습을 해서 또렷한 정신으로 받았으며, 자신의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밤새워 불도저를 분해했다가 조립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내성적이고 부끄럼을 잘 타는 성격을 학생회장에 출마하는 등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외향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바꿨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이긴 해도 이런 정도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면 있을 수 있다.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현실세계에서 의지력의 결과가 어떤 형태로 구현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명박은 너무 많이 이루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수십년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이름을 드높였고, 두 번의 국회의원을 거쳐 대한민국 수고 서울의 수장이 되었으며, 시장 월급을 전액 시민단체에 기부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200억 원대의 재력가가 되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큼 현재의 정치적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다.
무얼 더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런 정도로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능력, 부와 명예, 그리고 최정상의 정치권력을 모두 완비했던 인물이 우리 현대사에 또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어쨌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렇게 이루고도 자신감이 넘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25세 이전 이명박의 삶을 생각한다면 그 성취와 자신감은 더 드라마틱해진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이명박의 삶은 처절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가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큰 부상을 당한 형제 두 명이 병원비가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 자신 또한 온갖 궂은일과 영양실조로 10대 중반에 넉 달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지만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혹독하게 일을 했는지 몸이 너무 상해서 병역면제를 받을 정도였다. 바로 그런 청년이 40여 년 후 현재의 이명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수성가의 한 사례로 언급하고 말기에는 성취가 지나치다. 자수성가한 이들의 빛나는 성공을 시기하거나 업신여기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성취는 과도한 자신감을 부르고 그 뒤에는 법칙처럼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명박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이다.
인구 1200만, 1년 예산 11조원, 시 공무원만 1만 5000명인 거대 조직의 수장으로 중앙정부에 맞서 수도이전 반대를 외칠 수도 있고, 자신을 닦달하는 정치인을 향해 공개적으로 코웃음을 칠 수도 있으며, 곤룡포를 입고 패션쇼에 등장할 수도 있다. 외견상 이명박은 통제당할 수 없는 사회적 위치에 올라 있다. 히딩크 사진찍기 같은 사적인 스캔들만 재발하지 않는다면 그의 권위와 위치는 더없이 확고해 보인다.
▶ "그거 내가 경험해 봐서 다 안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절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경우에서 이명박의 자신만만함은 하늘을 찌른다.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쥐고 있는 해결사처럼 보인다.
자신의 성공경험을 기초로 한 그의 자신만만한 문제해결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어떤 사안에 접근하거나 비판세력을 논박할 때 관습처럼 내뱉는 수식어는 '그거 내가 경험해봐서 다 안다"이다.
밥을 굶기도 해봤고, 달동네에도 살아봤고, 고학도 경험했고, 사회 밑바닥일 중 안 해본 일도 없고, 데모하다 감옥에도 다녀왔고,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역임했고, 안 가본 나라도 없고, 국회의원도 해봤고, 테니스-클래식-발레감상 같은 취미생활도 빠지지 않았고, 미국에서 공부한 적도 있고, 종교적 봉사활동에 조차 적극적이었다.
'천하의 명박이가 이 나이에 안 해본 게 어디 있고 모르는 게 뭐 있겠나?'다. 게다가 그의 생활신조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반드시 그 속에서 뭔가를 얻고 그 귀한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가? 없다.
이명박처럼 영리한 사람의 경험칙은 실무적으로 효과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노하우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일처리 결과가 평균수준 이하일 위험성도 비교적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틀'을 중심으로 한 속도 중심의 문제해결 방식이므로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인간의 개별성에 관한 대목에 이르면 그의 디테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해진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 가장에게 '나도 사글세방에 살아 보아서 잘 안다. 그래도 너는 내가 겪은 가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정부에서 도움이라도 주고 있지 않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라는 식의 위로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 소녀 가장이 이명박의 어린 시절보다 덜 가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소녀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허구헌 날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는 물리적 궁핍함보다 정서적 황폐함이 더 문제가 된다. 배를 곯지는 않지만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처지가 부끄러워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겹다면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다. 가난의 정도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한 사람의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다. '배부른 투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관용구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개별적 경험과 단순비교하여 '그래도 니가 나보다 낫다'는 식의 포괄적 인식은 인간의 개별성을 휘발시켜버린다.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로 인한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정조차 똑같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동일한 물리적 자극에 대한 통증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동안 의료계의 통념은 그것이 심리적 요인에 의한 차이일 것이라는 쪽이었는데, 실험을 해보니 동일한 자극에도 어떤 이들이 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뇌의 특정 부분이 남들보다 더 활성화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극에 대해 유별나게 더 큰 통증을 호소한다고 엄살쟁이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이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주관적 존재인 것이다.
내가 경험했다고 해서 그 문제의 보편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일한 경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사안이라도 그때마다 개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청계천 주변에는 6만 5000여 개의 상가와 22만 명의 중소 상공인들이 있었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하면서 서울시가 이들과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은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복원공사의 성패가 달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대체로 무난하게 일을 처리하고 잇는 듯 보이는데, 이 사안에 관련해서도 이명박의 단골 메뉴는 '내가 노점상을 직접 해봐서 누구보다도 상인 여러분들의 고통을 잘 이해한다'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지만 요즘은 개천의 기억을 잃어버린 용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데, 이명박은 예외인지 끊임없이 개천의 기억을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짜 개천인지 의심이 생길 때가 있다.
이명박은 자신이 겪은 가난의 본질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한 자기 스토리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우월한 쪽으로 흡수된다. 과거는 찬란했으나 현재가 보잘것없는 사람은 과거 쪽으로, 과거에 비해 현재가 월등한 사람의 과거는 화려한 현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용으로만 기능한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변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곳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던 사람이 자살을 했다.
집에 돌아갈 차비조차 마련하기 힘들 만큼 장사가 되지 않는 날의 연속이었단다. 결국 그 날도 차비가 없어 자신의 가게에서 밤을 새우던 중년의 사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날 그 중년사내의 절박함은 이명박이 노점상을 했던 개인적 경험을 내세워 '충분히 이해한다'고 단순화해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명박의 진단에 따르면 22만명의 중소 상공인들 중 복원공사에 반대하는 이들은 3000명 정도였다.
그날 밤 목숨을 끊은 중년의 사내도 3000명 중 한 명으로 서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대의를 위한 소(小)의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그러면 마음도 편하고 골치도 안 아프다.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밀어 붙이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명박은 "찬성하는 사람이 90%이고 반대가 10%일 때 찬성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법이다.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들리는 소리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가 전부가 아닌 것처럼 자신이 경험한 것만이 세상의 모든 잣대는 아니다.
이명박식 어법으로 하면, 사상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46년 10개월간 0.75평의 공간에 갇혀 지냈던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도 '나도 대학 때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 학생 시위 주도사건으로 감옥에 갔다와봐서 당신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 힘을 내라'고 어깨를 두들겨줄 수 있다. 이명박의 일처리 방식에 효율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개별성에 대한 정치(精緻)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고방식 때문이다.
노련한 경험과 노하우란 어떤 면에선 '일정한 틀'을 의미한다. 불도저 앞에서 삽질 한번 해보자.
IBM 회장을 지낸 한 경영자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자신의 성공사례를 참조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성공사례에서 '일정한' 틀을 취해서 적용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앨빈 토플러도 "과거의 성공을 미래의 가장 위험한 요소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선 이명박이 자랑하는 기업의 전문경영인 경력이 시정을 펼치는데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기업의 CEO나 서울시의 CEO나 경영의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에 대한 디테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탁월한 소설가인 동시에 칼럼니스트인 어떤 이는 칼럼을 쓸 때와 소설을 쓸 때의 글쓰기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글쓰는 행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그의 말에 따르면 칼럼이라는 동일 장르 안에서도 매체의 성격이나 글의 용도, 심지어 원고분량에 따라 글쓰기 방식이 달라져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속도와 효율을 앞세운 개발드라이브를 통해 우리는 효율의 뒷면에 감추어진 놀랄 만한 비효율과 집단적 사고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인식은 '원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치열한 자기성찰조차도 원점에서 시작하지 않을 때는 '습관적 치열'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식의 습관적 성찰을 무기로 자신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무마시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이전의 '틀'을 제쳐놓고 인간의 개별성에 먼저 주목하여 그 일의 의미를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속도와 효율성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 당당한 '자뻑'의 권위주의
이명박의 처지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나는 서울시정을 그런 식으로, '원점 인식'으로 펼쳐가고 있는데 참 답답하다,
불도저란 말을 싫어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 아니냐, 그런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답답한 일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을 과거의 개념으로만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때로는 '변화를 주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잣대로만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식 어투로 말해보자면, 그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제3자가 보기에 서울시장 이명박의 문제해결 방식은,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소설가가 자신은 당연히 최고의 칼럼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자기도취에 빠져 시대에 뒤떨어진 계몽정신을 역설하는 칼럼을 양산하는 일과 닮아 있다. '나는 권위적인 행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라며 권위적인 태도로 말하는 사람을 볼 때 같은 자기모순을 발견한다.
이명박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 중역들에게 손수 운전을 강요할 정도로 권위적인 것을 혐오해왔다고 말하지만, 그의 태도는 다분히 권위적이다. 2003년 10월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문가 집단에서는 두 명 중 한 명이 이명박의 시정운영 방식에 대해 '권위적'이라고 평가했다.
'복지예산 현실화'를 요구하는 글귀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여성 사회복지사를 본 이명박은 "이런 옷 사 입을 돈이 있으면 운영비를 100% 지원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한다. 그는 또 "사회복지사들이 사비를 모아 마련한 것"이라는 답변에 "돈을 내서 그런 옷을 사 입을 정도면 월급이 많은 것 아니냐. 1인 시위나 유인물 배포활동을 하지 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복지에나 힘쓰라"고 충고했다. 당당함은 이명박의 전매특허이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조용히 살아야 하나? 이명박은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는 이유를 "입만으로 살아가려는 세상에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일 것이라고 자평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성격을 개조했"듯이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눈치다.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는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나사가 풀렸어. 좀 죄어야 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그 정도는 약과다. 그가 20대 후반에 현대건설 중기사업소 관리과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더했다. 출근시간을 7시에서 6시로 앞당긴 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침 6시에 운동장에 집합시켜 맨손체조를 10분간 시키고 20분 동안 공장 둘레를 돌아오는 구보를 시켰다. 정신이 번쩍 든 뒤에 작업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였단다.
1968년의 일을 현재의 시점에서 부정적으로 들먹이는 것 같아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에 대한 논란 때마다 불거지는 항변과 같은 맥락의 불만일 것이다. 시대에 맞는 당대의 상황논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오만에 가까운 이명박의 자신감과 권위주의의 한 단면을 얘기하는 중이다.
이명박 개인의 목표가 조직의 목표와 맞아 떨어졌던 시절에는 그런 방식이 폭발력을 발휘했다.
이명박은 과거보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세대는 얼마든지 초월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혹시 만의 하나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볼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10대 후반의 여자 조카들과 섹스 얘기도 거침없이 하고 껴안기도 잘하는 한 남자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성격이나 행동 때문에 조카들이 자기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할 거라는 믿음이 확고하다.
하지만 조카들의 말은 좀 다르다. 삼촌이 다른 중년남자처럼 고리타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성적 농담이나 스킨십이 지나쳐 불편할 뿐 아니라 삼촌의 '자뻑'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아도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명박은 "내가 무슨 행사를 할 때는 비가 온 적이 없었다"고 자랑한다. 현대에 있을 때도 그랬고 시장이 되고나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장의 일부 측근들조차 "날씨가 아무리 궂어도 이 시장님이 행사에 참석해 가위를 들기만 하면 말짱하게 갠단 말이예요. 시장님은 현대 시절부터 그랬대요"라며 그 말을 신봉하는 눈치다. 내부집단 간 상호격려 차원의 덕담이라면 몰라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행사날짜를 정할 때 몇년 동안의 날씨 통계를 분석해서 확률적으로 비올 날을 피한다는 이명박 나름의 근거를 감안해도 그렇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연의 현상조차도 통제가능하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재산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이명박은 "난 정치인들이 재산 없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도와줄 돈도 못 벌어본 사람들이 누굴 위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겁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앞으론 성공한 기업인 출신이 아니면 정치입문을 자제해야 할 듯 싶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인 중에서도 최소 200억 원 이상의 재력가가 아니라면 이 정도에서 꿈을 접는 게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명박 같은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십상일 테니까.
70년대에 라디오를 통해 우리나라 권투선수의 해외원정 경기 중계방송을 듣고 있으면 무조건 우리 선수가 이기게 되어 있다. 경기 내내 맞은 것은 살짝이고 때린 것은 대부분 결정타라고 전하니 당연하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 선수의 압도적 판정패인 경우가 많았다. 자기중심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애국적 아나운서와 해설자 덕분이다. 이명박처럼 영리하고 판단력 빠른 사람이 설마 그 정도로 자기중심적일 수 있겠는가 싶지만, 자신감과 현실에서의 성취가 놀라울 정도로 자주 궁합이 맞다보면 반복되는 잔 매에 무너지는 권투선수처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30여 년 전 이명박은 "인간의 의지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를 느꼈는데, 검진결과 간염이었다. 무조건 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바로 그해 30대 중반의 나이로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이명박은 살인적인 스케쥴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의사가 진료를 포기할 만큼 고집불통으로 일에 매달린 환자였지만 10년이 지나 이명박의 간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간염바이러스 항체마저 새로 생겨나서 치료약도 개발되지 않은 간염이 완치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이명박 자신의 해석은 이렇다. "의학적으로 특수체질이기 때문에 간염을 물리친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되겠지만 나는 그렇게만 이해되지 않는다. 일에 몰두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기적적으로 자연치유를 경험한 사람 중에는 턱없는 자기만의 확신을 갖는 사람이 많다.
그 대상은 종교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이나 계기, 특정 물질일 수도 있다. 이명박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온전히 통제해온, 또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런 불가해한 영역에서의 극적인 경험은 오히려 독이 된다. 만일 그때 이명박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병세가 위중하여 죽음을 넘나드는 투병기간을 잠시라도 거쳤더라면, 그래서 갈등의 영역인 '중간지대'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한번쯤 가졌더라면, 지금처럼 의지력과 신념을 최우선으로 하고 인간의 개별성을 간과하는 듯한 태도를 일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히딩크 사진찍기 사건에서 이명박이 얻은 교훈처럼 '더 큰 실수를 막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 통제불능의 자신감, 그리고 착각
이명박은 자신이 현대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명박은 해낸다는 인식을 기업주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정주영 회장의 가신이라는 평을 안 듣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명분을 유지하면서 일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현대라는 기업에서 이룩한 탁월한 업적과 독특한 위상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선적인 측면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반대를 많이 한 사람이 이명박이었다고 한다. 현대라는 기업의 앞날을 생각해서였다.
그와 관련 정주영 회장의 퉁명스러운 반응은 "망하면 내가 망하지, 안 그래요?" 였는데 이명박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단다.
법적인 주인은 정 회장이었지만 그는 입사 이후 단 한 번도 현대를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흠집내자는 건 아니지만 정주영 회장은 오너의 처지에서 이명박이라는 전문경영인에 대해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대라는 세계에 몰두하느라 이명박만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혹시 아닐까?
이명박 자신의 증언을 토대로 한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 한 토막을 들어보자.
정주영 회장은 평소에 자신이 120세 정도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런데 77세 생일날 중역 한 사람이 "회장님 백수 하십시오" 하고 축배를 했다. 다음날 아침 정 회장은 이명박에게 저렇게 눈치 없는 중역이 있느냐며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라고 말했다. 그 중역은 6개월 동안 다른 곳에 전근을 가 있다가 복귀되었다. 단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는 이유로 쉰이 넘은 나이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그 중역에게 이명박은 전근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지금도 일부 기업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물며 당시에는 그런 전근대적인 풍경들이 거의 모든 조직에서 일상사처럼 벌어졌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볼멘소리를 한다면 이명박답지 않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주영 회장의 가신으로가 아니고, 사회적 명분을 가지고 일한 최고경영자 이명박"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명박은 당대의 흐름에서 반 박자 앞서 나간다는 자부심이 충만한 사람이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이유도 상대 노무현 후보가 훨씬 나아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남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자신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규정하기도 한다.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이명박이 선거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하던 한 사람이 자기예측이 틀렸다며 이명박을 찾아와 겸연쩍게 당선축하를 해주었단다. 그때 이명박이 그 사람에게 한 말은 곰곰이 씹어볼 만하다.
"당신의 예측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예측은 맞았는데 당신의 예측대로 될 수 없게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국민들의 의식이 바뀐 것입니다."
혹시 그 말은 이명박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화두가 아닐까?
청계천 복원사업 등을 통해 60% 이상을 웃돌던 지지도가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 직후 반토막 났다거나 수도이전 반대가 이명박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것이라는 등의 분석은 적어도 내겐 흥미롭지 않다.
이명박의 언행을 대권행보나 정치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면 이명박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 이명박의 왕팬이라는 한 여성은 그가 박력이 있어서 좋다며 좀 잘난 척하는 것 같긴 해도 대통령이건 누구건 무서워하지 않고 소신 있게 말하는 것이 근사해 보인다고 말한다.
나도 이명박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나는 나를 내리누르는 어떠한 힘 앞에서도 굴복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이명박 같은 인물은 흔하지 않다. 쿨한 정도가 지나쳐 매사 쉽게 포기하고 타협해버리는 풍토에서 이명박처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당당한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성향이 그 사람이 가진 거대한 사회적 권력과 맞물려 '통제불가능한 파워'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면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 전진을 위해서도 필요한 '백미러'
나는 이명박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니 언젠가 이명박이 지적한 한국인의 두드러진 단점 하나가 생각난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아 인재를 못 키우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덧붙여 만일 지금 이순신 장군의 사생활을 들추어내어 그의 실수와 인간적인 약점들을 찾아낸다면 역사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고 반문한다.
나는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제일 먼저 이명박의 그 말들을 몇번이고 곱씹었다. 내가 이명박이 지적하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다짐과 글의 내용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의 처지에서 이 글을 보면 못마땅한 구석이 오죽 많겠는가.
만일 이 글이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효용성이 있다면 그 효용성이 온전히 이명박 자신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얼마 전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수십 년 전부터 과학계에서 금과옥조처럼 통용되는 자신의 블랙홀 이론이 잘못됐다면서 수정이론을 발표했다. 언론들은 이 위대한 과학자의 자기수정 능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그 오류를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이론을 창안한 스티븐 호킹의 천재성에 경탄하는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나는 현재의 이명박에게서 이명박 스스로 수정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듯한 부적절한 당당함, 통제불가능의 자신감을 느낀다. 만일 세간의 평가처럼 이명박이 대권을 향한 야망이 있다면 대중들에게 '통제불가능의 이미지'로 비쳐진다는 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진하기 위해 그동안 접어놓았던 백미러 버튼을 눌러 (자동차 사이드미러처럼) 날개를 펴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기 바란다. 잠시 멈추라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조금만 늦추라는 것뿐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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