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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말 ‘경청’하는 법

테마파크 2008. 7. 30. 22:35

[자녀의 말 ‘경청’하는 법]

 

한겨레기사등록 : 2008-07-27 오후 05:18:22 기사수정 : 2008-07-27 오후 05:26:13 

 

[잘못 잡으려 말고 감정 읽어주라]

 

» 자녀의 말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경청하게 만드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커버 스토리 / 자녀의 말 ‘경청’하는 법

 

“아이들 말을 경청해야 하는 건 알지만 시시콜콜한 얘기를 다 듣고 있자면 터무니없을 때가 많아 자꾸만 중간에서 말을 자르게 되더라고요. 나부터 고쳐야지 하면서도 얘기를 듣는 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네요.”

 

경청하지 않는 자녀는 경청하지 않는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다.

 

‘부모2.0’(www.bumo2.com) 회원에게 물었더니 자녀가 경청하지 않는다고 답한 부모의 대부분이 ‘나 역시 자녀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고 했다.

 

듣다 보면 한숨만 나오는 내 자녀의 말, 열심히 들어주는 ‘경청’의 지혜는 어떤 걸까.

 

■ 자녀의 숨겨진 감정을 파악하라

 

부모들은 흔히 자녀의 말을 들으면서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찾아 고쳐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한테 말을 하는 자녀의 감정을 파악하는 일이다.

 

<경청-마음을 얻는 지혜>의 저자 조신영씨는 “부모들이 자녀의 행동을 고치려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런 행동을 하는 자녀의 감정을 100%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행동을 고치는 것은 자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녀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감정적인 지지를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적절한 반응을 통해 자녀의 감정을 100% 이해하고 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조씨는 앵무새 반응, 좌뇌 반응, 우뇌 반응을 추천한다.

앵무새 반응은 상대방의 말을 가감없이 그대로 되받아주는 것을 말하며 좌뇌 반응은 상대방의 말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서 응대해주는 것이다.

우뇌 반응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재구성해서 응대하는 것을 말한다.

 

■ 억지로 듣지 마라

 

자녀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무조건 듣는 것은 좋지 않다.

 

손병목 부모2.0 대표는 “자녀가 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안 그런 척 억지로 수용하는 태도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며 “환경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경청하려고 애쓰되 그럴 수 없다면 솔직하고 분명하게 부모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단, 자녀의 말을 경청할 수 없는 상황을 성실하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부모에게 말을 하려고 했으나 좌절되면 자녀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때는 ‘나 전달법’을 활용하면 좋다. 나 전달법은 누군가의 행동이 불쾌할 때 그 행동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기 앞서 내 감정을 정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차 안에서 장난을 치면 나는 정신이 산만해지고 불안해져서 운전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식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경청은 ‘뇌+귀 종합능력’]

 

집중해서 들어야 남는다

» 청각정보 처리과정에 문제가 있을 때 생기는 일

 

듣기와 경청은 뇌가 기억하고 학습하는 데에도 다른 영향을 끼칠까?

 

장내혁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청각이 뇌의 기억과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라면서도 “뇌가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 비추어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뇌는 청각·시각·촉각·후각 등의 감각을 통해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시상’에 모았다가 다양한 두뇌 영역으로 보내는데 이때 정보의 중요도가 판별된다.

뇌가 기왕에 지닌 지식 등을 동원해 새로운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순간인 것이다.

 

장내혁 선임연구원은 “들어온 정보가 깨끗하지 않고 잡다한 것이 섞여 있으면 뇌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집중해서 들은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는 처리과정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는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구 결과 이상훈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뇌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따라서 경청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의사소통 능력이나 읽기, 쓰기, 주의집중력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고 유보춘 종로두뇌학습클리닉 원장은 말한다.

그는 “경청은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작업인데, 귀가 소리로 들어오는 정보를 ‘조율’하고 그에 따른 ‘신체의 움직임’을 동반하며 필요치 않은 정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세 가지의 과정으로 이뤄진다”며 “수동적인 듣기를 하는 것과는 당연히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경청은 소리를 해석하는 말초기관(귀)과 중추신경(뇌)의 종합적인 능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진명선 기자

 

 

 

“받아쓰기 안 되는 아이들 보고 모임 꾸려”

 

듣기교육 연구 ‘예천국어교사연구회’

 

사투리가 생생한 목소리로 녹음된 듣기 평가 콤팩트디스크(CD)가 있다? 없다?

 

정답은 있다.

경북 예천국어교사연구회 소속 5명의 교사(예천여중 이림, 안동고 추선화, 문경여중 김두년, 안동중 김명희, 안동중 인계분교 강상호)가 지난해 직접 녹음한 국어 듣기 평가 시디가 그렇다.

“말을 하는 사람도 사투리를 쓰고 듣는 사람도 사투리를 쓰는데 굳이 표준어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사투리 언어권에서의 듣기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죠.” 모임의 막내 추선화 교사의 말이다.

 

예천국어교사연구회가 ‘듣기’로 연구모임을 처음 가진 것은 2004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말하기와 듣기 교육을 함께 연구하려고 했지만 학생들의 말하기가 안되는 이유는 결국 ‘듣기’ 훈련이 안 된 탓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듣기 중심으로 연구 주제를 바꿨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회장을 맡았던 이림 예천여중 교사는 “학생들은 교실에 조용히 앉아 듣기만을 강요받고 교사들은 그것을 경청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며 “조·종례 시간에 교사가 전달하는 지시사항을 다음날 제대로 해오는 학생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며 듣기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제자들의 듣기 실태를 알게 되면서부터 듣기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받아쓰기 실력이 생각보다 형편없었다.

10개 문장을 시험봤는데 다 맞힌 학생이 26명 가운데 단 1명이었다.

물론 단어가 아닌 문장을 받아쓰는 일이었다.

문장 전체의 맥락을 듣는 능력이 부족해 단어 하나에 집착하는 탓이었다.

의욕적으로 시작은 했지만 듣기 교육과 관련된 선행 연구나 참고자료가 없어 시행착오가 많았다.

 

2006년 회장을 맡았던 강상호 예천중 교사는 “처음 듣기 문항을 만들었더니 읽기 문항과 다를 바가 없었다”며 “토익이나 토플 문제처럼 문제를 지우고 보기만 준 것도 듣기 고유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3년여의 모임 끝에 교사들은 중학교 1, 2, 3학년에 맞는 듣기 문항 200문항을 개발했다.

문제의 성격도 구분했다.

내용이해, 추론, 비판 및 감상 등 다양한 듣기 영역 기준으로 각각 문제를 개발한 것이다.

지난해 2월 128쪽 분량의 듣기 자료집을 100부 정도 만들어 예천과 안동, 문경 등 근처에 있는 교사들에게 나눠줬다.

 

이 자료집은 전국국어교사모임에도 보냈으므로 원하는 사람들은 전국국어교사모임으로 연락하면 된다. 듣기 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도전이 제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교사들도 알 수 없다.

공감하며 듣기, 판단하며 듣기 등 다양한 듣기의 영역은 오지선다형 듣기평가로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교사들 스스로의 변화다.

 

추선화 교사는 “말썽꾸러기 제자들을 이해할 수 없어 힘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연구모임이 끝날 즈음 제자들이 나더러 ‘우리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며 “듣기와 관련된 이론을 배운 것보다 나도 모르게 경청의 힘을 기른 것 같아 좋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